애니메이션 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4집 앨범까지 낸 희귀 가수였다. 내 앨범보다 프로듀싱했던 YB, 강산에, 이은미, 박기영 씨앨범이 더 잘됐다.(웃음) 2004년에 기타의 끝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에 공부하러 갔는데 영화음악학과 첫 수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영상 음악에 푹 빠졌다. 똑같은 장면이라도 음악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게 매력적이었다. ‘내 갈 길은 이거다’ 라고 결심한 뒤 5년 정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 위스키 브랜드 윈저의 광고영상 ‘쉐어 더 비전’ 으로 입봉했다. 이후 영화 신들의 섬 제주를 비롯해 10년 넘게 각종 드라마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2022년에 이상석 에이컴즈 대표를 우연히 만났다. 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인데 음악 퀄리티만 높여달라면서 대뜸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하더라. 애니메이션 음악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주저했는데 이 대표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굳혔다. 직책은 음악감독인데 하다 보니 9월에 개봉하는 ‘안녕, 할부지’의 제작총괄까지 맡게 됐다. 엉겁결에 PD로도 데뷔한 셈이다.(웃음)
영화 제작을 이끈 소감은?
에이컴즈가 애니메이션 제작사라서 실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적임자를 데려오기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나한테 “드라마 제작 과정 전반을 잘 알고 있으니 제작총괄을 맡아달라” 고 요청하는데 뿌리칠 수 없었다. 작년 11월쯤 기획에 들어갔는데 일단 제작진을 구성하는 게 급선무였다. 푸바오가 4월에 중국으로 가니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감독, 편집감독, 작가, 촬영 스태프 등 제작진을 꾸려 일단 촬영부터 시작했다. 작업기간이 짧은데다 음악감독과 PD 역할을 병행해야 해 엄청 버거웠다. 스태프는 잘 꾸린 건지, 맞게 가는 건지, 부족한 건 없는지, 방향은 잘 잡은 건지 같은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부담감이 컸다. 그래도 어찌어찌 만들어 여기까지 왔다. 마침 오늘(8월 20일) VIP 시사회가 있었다. 가편집본을 처음 공개한 자리였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우리가 생각한 게 틀리지 않았구나’ 란 생각에 한시름 덜었다.(웃음)
제작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주키퍼들(사육사)의 뒷이야기와 고퀄리티 영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연출은 최대한 배제했다. 멋있는 장면을 만들어 뭔가 과시하려고 하면 대중은 곧바로 알아챈다. 다큐멘터리답게 대상이 움직이는 모습과 그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해 진심을 담으려고 애썼다.
관전 포인트를 짚어달라
푸바오를 모르는 사람도 이 영화를 보면 아마 세 번은 울지 않을까 한다. 새끼를 낳고 키운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미 아이바오가 새끼를 조심스럽게 물어 가슴에 올려놓고 젖을 먹도록 돕는 모습은 우리를 키웠던 엄마를 떠올리며 위대한 모성애를 느끼게 한다. 영화용 카메라를 많이 활용한 덕에 영상 퀄리티도 뛰어나다.
연출감독, 카메라감독과 함께 판다를 처음 보러 갔는데 그간 TV로 보던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무척 신비로웠다. 우리가 영상에 신경 써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면 TV와 전혀 다른 색감이어서 실제와 가장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키퍼들의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도 감동적이다. TV가 주로 바오 패밀리와 주키퍼들의 호흡, 움직임을 보여줬다면 영화는 그들의 개인 공간, 일과 후 모습, 바오 패밀리를 향한 남모를 애정 등에 주목한다. 3월 3일 푸바오를 마지막으로 공개한 날, 관람객들이 모두 떠나고 방사장 청소를 마친 후 그들의 공허한 마음같은 백스테이지를 있는 그대로 담았다.
음악도 특별하다. OST를 잘 부르지 않는 이문세 씨가 ‘나의 아이’ 란 노래를 불러 깊은 감동을 선물한다. 아이바오를 자신의 딸이라고 여기는 강철원 주키퍼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김푸름 씨가 부르는 ‘안녕’ 이란 곡은 푸바오가 사람들과 이별하는 장면에 나오는데 키우던 반려묘를 떠나보낸 감정을 가득 담아 불러 호소력이 짙다. 박요한 감독이 피아노로 연주한 할부지의 엄마란 테마곡에도 이런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솔직히 말하면 안녕, 할부지를 끝으로 PD는 다신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일을 꾸려가는게 너무 힘들었다.(웃음) 대신 작가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순 있을 것 같다. 4∼5년 전부터 조금씩 써오던 시나리오가 있는데 올해 책으로 나온다. 욕심내서 뭔가 해보려고 한 건 아닌데 운 좋게도 미니시리즈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1987년 신촌의 한 작은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응답하라1988, 써니, 심야식당과 비슷한 장르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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