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지난 호까지 사내 창작이나 타인과의 공동 창작에 관해 살펴봤다면, 이번 호에서는 외주의 영역을 다뤄보려고 한다. 인기 캐릭터를 만들다 보면 내부 인력만으로 모든 과정을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온다. 캐릭터 디자인은 전문 스튜디오에 맡기고, 세계관 설정은 프리랜서 작가에게, 굿즈용 일러스트는 또 다른 외주사에 의뢰하는 식이다. 실무에서는 이를 용역 · 위탁 · 도급 · 외주 등으로 부르는데, 이 글에서는 익숙한 '외주제작'으로 통칭한다.
외주제작에서 당사자 관계를 규정하는 기본 틀은 민법이다. 하지만 캐릭터 실무자라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저작권법의 대원칙인 창작자주의와 저작인격권 · 저작재산권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까지 이해해야 한다.
저작자의 지위
외주제작에서 저작권이 누구에게 가는지 따지려면 먼저 누가 저작자인가를 알아야 한다.
저작권법상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이다. 그래서 단순 조수나 어시스턴트는 저작자가 아니다. 최근 부쩍 늘어난 생성형 AI도 저작자가 될 수 없다.
핵심은 그 작업이 창작적 작업인지, 단순 보조적 · 비창작적 작업인지 구분하는 데 있다. 창작적 작업일 때에만 비로소 저작권 귀속과 양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문자 A의 지휘 아래 프리랜서 E1 · E2가 채색, 톤 정리, 말풍선 배치 같은 단순 · 반복 작업만 했다면 저작자는 원칙적으로 A뿐이다. 법원도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구현한 사람에게는 저작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누구나 비슷하게 할 수밖에 없는 단순 채색이나 반복 렌더링에는 창작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할이 단순 보조를 넘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외주 작가가 독자적으로 배경을 디자인하고 새로운 색채를 설계하며 캐릭터의 표정과 동세를 실질적으로 결정했다면, 그 작가도 저작자(또는 공동저작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작가실(스튜디오)을 운영하거나 외주사에 디자인 · 아트 작업을 맡길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기획 콘셉트와 최종 표현을 누가 정하는지, 외주 인력의 재량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승인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계약서나 업무지시서에 미리 문서로 남겨두고 애매하다 싶으면 계약으로 권리관계를 분명히 해두는 것이 최선이다.
위임과 도급
가. 위임과 도급의 법적 성격
외부 프리랜서나 전문회사에 작업을 맡기는 계약은 민법상 대개 도급 아니면 위임이다. 도급은 캐릭터 디자인이나 시나리오처럼 완성된 결과물을 받아내는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위임은 결과물의 완성 여부보다 일정한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의 처리'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만약 D2가 이들로부터 저작권을 제대로 넘겨받지 못했다면, A는 D2에 대금을 다 치르고도 정작 권리는 확보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래서 D2와 계약할 때는 재하청 허용 여부와 함께 'D2가 실제 창작자 모두에게서 적법한 권리를 확보했음을 보증한다'는 보증 · 면책 조항을 넣어두어야 한다.
나. 저작권은 발주자가 아닌 외주자에게 귀속
A가 프리랜서 작가 D1이나 전문회사 D2에 콘셉트 아트, 브랜드 세계관 문서, 게임 시나리오 등을 의뢰했다고 하자. 흔히 '내가 돈 주고 시켰으니 당연히 내 것'이라 여기지만, 발주했다는 사실만으로 저작권이 발주자 A에게 처음부터 돌아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특히 저작권법에는 미국처럼 외주 결과물을 발주자 소유로 인정하는 포괄적인 업무상저작물(Work made for hire) 제도가 없다. 따라서 A가 D1에게 콘셉트 아트나 캐릭터 세계관을 의뢰했더라도, 계약서에 저작재산권 양도 조항을 넣지 않았다면 저작권은 창작자인 D1에게 그대로 남는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컴퓨터프로그램 같은 기능적 저작물에서는 예외를 인정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롯데월드의 너구리 캐릭터(로티) 사건은 달랐다. 주문자가 제작물의 모든 권리를 자신에게 귀속시키고 수정 요구에도 제작자가 응한다는 약정까지 맺었는데도, 법원은 너구리 기본 도안의 저작자를 주문자가 아니라 제작자로 보아 창작자주의 원칙을 지켰다(대법원 1992. 12. 24. 선고 92다31309 판결).
다. 전문회사와 계약할 때의 중첩 구조
A가 프리랜서가 아니라 전문제작사 D2와 계약하면 구조가 한 단계 더 복잡해진다. 정작 실제로 캐릭터를 그리는 사람은 D2의 직원이거나, D2가 다시 재하청을 준 또 다른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라. 외주자가 생성형 AI를 활용할 때의 주의점
요즘은 외주사나 프리랜서가 시안이나 배경 작업에 생성형 AI를 쓰는 일이 많다. 이때는 두 가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첫째, AI가 만든 이미지나 텍스트는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둘째, AI 학습데이터에 남의 저작물이 섞여 있어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주문자는 계약 단계에서 AI 활용 방식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 예시1(AI 사용 금지)
제작자(직원 및 재하청 인력을 포함한다)는 결과물 제작 과정에서 어떤 형태의 생성형 AI 도구도 사용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해 생긴 저작권 미등록이나 허위등록 문제, 타인 권리 침해 등의 손해는 제작자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 예시2(AI 사용 제한)
제작자(직원 및 재하청 인력을 포함한다)는 아이디어 스케치나 단순 참고 목적에 한해 AI를 쓸 수 있고, 최종 결과물에 AI 생성물이 직접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 AI 도구를 쓸 경우 적용 범위와 사용한 툴을 사전에 주문자에게 서면으로 알리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하거나 AI 사용 사실을 숨긴 채 등록해 생긴 저작권 미등록 · 허위등록 문제, 타인 권리 침해 등의 손해는 제작자가 전적으로 책임진다.
위임 · 도급 시 주의사항
외주제작 계약에서 주문자가 특히 신경 써야 할 세 가지 항목이 있다. 저작재산권의 양도 범위, 저작인격권의 처리, 그리고 저작권 양도등록 협조의무다.
그래서 주문자는 계약할 때 '납품된 저작물을 국내외에서 주문자 명의로 저작재산권 양도등록할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명시하고, '제작사는 국내외 저작권 양도등록에 필요한 서류 제출 등에 적극 협조한다'는 의무 조항을 반드시 넣어두어야 한다.
가.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포함한 저작재산권의 전부 양도
저작재산권은 양도할 수 있지만 어떤 권리가 넘어가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특히, 저작권법은 제45조 제2항에서 특약이 없으면 2차적저작물작성권이 양도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캐릭터로 굿즈 · 이모티콘을 만드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부가 수익을 내는 사업은 2차적저작물작성권의 영역이다. 그러니 계약서에 두루뭉술하게 '모든 저작권을 양도한다'고 쓸 것이 아니라, 복제 · 배포 · 공중송신 · 전송은 물론 번역 · 각색 · 영상화 · 게임화 · 상품화 · 2차사업화 권리까지 하나하나 나눠 적어야 안전하다.
나. 저작인격권 불행사 특약과 사전 동의 설계
두 번째는 저작인격권이다. 동일성유지권 · 성명표시권 · 공표권은 창작자에게만 붙어있는 일신전속권이라 아예 양도되지 않는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양도가 아니라 사전 동의 구조를 짜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언제 어떻게 공표할지, 크레디트에 실명 · 필명 · 무명 중 무엇으로 표기할지, 캐릭터를 자막 · 로컬라이징 · 플랫폼 규격에 맞춰 편집 · 수정하거나 프로모션용으로 일부만 발췌해도 되는지 등에 관해 사전 동의 범위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해둔다. 다만 이렇게 낱낱이 열거하면 오히려 열거한 것만 허용되는 것으로 좁게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위는 예시이며, 저작인격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한 결과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포괄 문언을 함께 넣어두는 것이 좋다.
다. 저작권 양도등록
저작권 등록은 권리가 생기는 요건은 아니다. 하지만 제3자에게 권리를 주장할 대항력과 침해자의 과실을 추정하게 하는 힘을 확보하는 핵심 수단이다. 문제는 우리 법이 창작자주의를 택하고 있어 업무상저작물이 아닌 한 최초 저작권은 실제로 만든 외주사(제작자)에게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문자는 계약할 때 '납품된 저작물을 국내외에서 주문자 명의로 저작재산권 양도등록할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명시하고, '제작사는 국내외 저작권 양도등록에 필요한 서류 제출 등에 적극 협조한다'는 의무 조항을 반드시 넣어두어야 한다.
실무상 체크포인트
누가 창작했는가와 누가 돈을 지급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실무에서는 단순한 법조문보다 권리 이전의 완전성을 뜻하는 '체인 오브 타이틀(Chain of Title)'을 명확히 확보했는가가 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따라서 작업 초기 단계부터 권리관계를 꼼꼼히 다져둘 필요가 있다.
먼저 표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실제 인간 창작자를 특정하고, 단순 보조자 · 자료 제공자 · 생성형 AI와 구별한다. 이어 그 작업이 공동저작 · 결합저작 · 업무상저작물 · 외주제작 중 무엇인지 가려야 권리 귀속과 행사 방식이 정확히 잡힌다.
외주 계약에서는 저작재산권 양도와 이용 허락 범위를 미디어 · 사업별로 잘게 나눈다. 특히 특약이 없으면 넘어가지 않는 2차적저작물작성권과 영상화 · 게임화 · 굿즈화 · 해외판권을 명시한다. 저작인격권은 양도되지 않으므로 주문자로서는 편집 · 수정 · 크레디트 표기 · 퍼블리시티에 대한 사전동의(불행사) 구조를 계약에 정교하게 담아야 위험이 줄어든다.
결과물을 받으면 곧바로 주문자 명의로 양도등록을 마쳐 대항력과 추정력을 확보한다. 전문회사와 협업할 때는 그 회사가 직원 · 재하청 작가로부터 권리를 적법하게 넘겨받았는지 확인하고, 계약서에 진술 · 보증, 면책, 양도등록 협조의무 조항을 넣어야 안전하다.
끝으로 한국 · 미국 · 중국 등 나라마다 저작권 제도가 다르므로 해외 진출까지 내다보고 권리 확보 절차를 서면으로 완비해둔다.

최성우
· 특허법인우인 대표변리사
· 한국상표·디자인협회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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