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2017년 캠프파이어애니웍스에 들어와 뒤죽박죽섬의 빅풋패밀리, 레인보우 버블젬, 헬로미스터 선글라스 등 다양한 프로젝트의 제작 PD를 맡고 있다.
원래 PD를 꿈꿨나?
저널리즘과 광고 홍보가 전공이라 사실 애니메이션 제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사회에 나와 처음 한 일도 마케팅이었다. 그러다 창작 활동에 흥미를 느껴 스튜디오에 들어갔는데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푹 빠졌다. 장면 하나에 들어가는 대사 한 줄부터 마지막 장면을 비추는 한 줄기 빛까지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다. 당시 사업부서 소속이었는데 대표님과 감독님께 PD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고맙게도 받아들여 주셔서 그때부터 PD의 길을 걸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지금껏 참여한 모든 프로젝트에 애착이 간다.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레인보우 버블젬이다.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했던 여아물이 내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감격스러웠다. 다른 유·아동 애니메이션과 달리 영화 같은 레이아웃 연출로 환상적인 마법 소녀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는데 작업하는 내내 신나고 즐겁웠다.
작품을 만들면서 뿌듯했던 순간, 아쉬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작품의 한 장면에 감동해 삶에 영향을 받았다고 누군가 얘기할 때 가장 뿌듯하다. 레인보우 버블젬에는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주인공 퍼플이 나온다. 세상의 편견이나 본인 능력의 한계점이 드러났을 때 좌절하기도 하지만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런 마음이 시청자에게 닿아 퍼플처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됐다는 후기를 보고 정말 기뻤다. 하지만 수년간 열심히 만든 프로젝트가 너무나 소소한 이유로 무산되거나 방영되지 못할 때는 속상하다. 제작 여건이 안 좋아 멈춘 게 아니라 사업상 또는 파트너십이 깨져서 좋은 작품이 컴퓨터 안에서 곤히 잠든 모습을 너무 많이 봤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모든 팀원과 단합이 잘돼 생각보다 더 멋진 결과물이 나왔을 때 힘을 얻는다. 애니메이션은 결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업자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과 열정을 갖고 일하지만 이를 한데 모아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건 어렵다. 잘하는 사람에게 “알아서 잘 만들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만으로 결코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게 애니메이션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각 아티스트의 예술적 창작 역량을 끄집어내 모두가 원하는 멋진 애니메이션 한 장면을 완성해갈 때 느끼는 그 희열감이 가장 큰 동력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나?
특정 분야의 장르나 이야기보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 이 분야 최고 아티스트들을 한곳에 모아 세상에 없던 멋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 꿈이다. 멋진 이야기와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모여야만 비로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그런 장면이 있는 장르나 드라마라면 무엇이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건 특별하고 겸손한 리더십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떤 장르든, 어떤 이야기든 행복하게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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