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업계를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불투명한 비전, 강도 높은 노동량, 낮은 처우 탓에 애니메이션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오늘도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PD들이 있기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현장의 PD들을 만나 애니메이션을 향한 그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장인 정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프리랜서 PD로 활동 중이다. 오즈콘텐츠가 만드는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현재 TV조선의 싱코리아, 국회방송의 주요 생중계도 맡고 있다. 유튜브 콘텐츠도 만든다. 방송계에 들어온 지 20여 년 됐다. 원래는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그래서 영화판에 조연출로 들어갔는데 부딪혀 보니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 방송 쪽으로 틀었다. 방송 프로그램 PD도 연출가니까.
애니메이션 PD에 도전한 계기가 있었나?
2018년쯤이다. 오즈콘텐츠가 이제 막 일을 시작할 때였는데 KBS에서 함께 일했던 오주희 대표가 갑자기 애니메이션 연출 PD를 맡아달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일반 프로그램과 좀 다르지 않나 싶어 낯설었는데 더빙이나 음향 효과처럼 익숙한 사운드 작업이 많아서 해볼 만하겠더라. 그때 만든 첫 작품이 천재소년 큐보그다. 작업 시간이 꽤 오래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에서 만든 작품이어서 대사를 다시 손봐야 한 것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처음이라 더 열정적으로 덤볐던 것 같다. 한 번 해보고, 바꿔서 또 하고를 수십 차례 반복했다.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이었겠지. 한 번 해보니 재미가 들려서 그런지 이제는 애니메이션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간 참여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는다면?
몬스터탑, 듀얼아머 블레이드, 고고다이노, 댕댕어드벤처 제작에 참여했다. 그중 코드네임X는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들게 한 작품이어서 가장 인상 깊다. 순수 국산 작품이었거니와 그저 애니메틱만 보고 처음부터 모든 소리와 톤을 만들어가야 했다. 감독님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그림과 대사, 사운드를 조금씩 완성해 갔다. 진짜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캐릭터 하나하나에 숨결을 불어넣었다고 자신한다. 내 안에 살아 숨쉬는 PD 본능을 하얗게 불태웠다고나 할까.(웃음) 애니메이션을 향한 열정을 확인하고 연출 역량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던 뜻깊은 작품이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 아쉬웠던 순간은?
더빙할 때 성우들이 각자 자신 있게 잘 내는 소리 대신 내 디렉팅에 맞춰 완전히 다른 소리를 냈는데 캐릭터와 합이 잘 맞을 때, 성우들의 숨은 재능을 발견했을 때, 이를 통해 완성도 높은 최고의 결과물이 나왔을 때 도파민이 마구 터진다. ‘이미 있는 것 갖다 쓰는 게 뭔 PD냐, 하나라도 새로 발굴하는 게 PD’라는 옛 선배의 말이 떠오르더라. 반면에 제작진끼리 손발이 안 맞을 때는 힘들다. 작품은 PD 혼자 만들 순 없다. 애니메이션 연출도 똑같다. 제작진과 함께 달려가게 하는 것이 PD의 역할인데 트러블이 생기면 정말 골치 아프다. 또 방송에 나갔는데 음향 밸런스가 맞지 않거나 연출이 미흡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애니메이션은 내게 힐링을 주는 것 같다. 에너지 소모가 많은 예능 현장을 떠나 애니메이션 더빙 현장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촬영 현장은 변수가 많은데 스튜디오에 오면 주어진 그림 안에서만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 되니까. 평면의 그림에 더빙과 사운드를 하나둘 입히고 차곡차곡 쌓아 내가 의도한 대로 결과물이 쭉쭉 나오면 정말 짜릿하다. 그런 기쁨이 마음의 안정과 평화로 이어지는 것 같다.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이야기가 있나?
몸은 방송 쪽에 있지만 여전히 영화감독을 꿈꾼다. 10년째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작품이 있다. 초파리에 관한 SF물이다. 초고를 쓰고 계속 다듬는 중이다. 사람과 유전자가 99%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기획한 스릴러인데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진 모르겠다.(웃음) 언젠가는 이 작품으로 꼭 감독으로 데뷔하고 싶다. 실사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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