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적신 <아가미>의 감동 그리고 안재훈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4-12-17 11: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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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 <아가미>가 제37회 도쿄국제영화제의 공식 초청을 받아 일본 관객을 만났다. 안재훈 감독과 함께 비행기에 오른 연필로 명상하기의 한승훈 프로듀서, 형슬우 감독, 배우 박지연 씨, 박윤희 통역사가 현장에서 보고 느낀 생생한 감동을 기록으로 남겼다.



<한승훈 프로듀서의 기록>
11월 1일부터 닷새간 머물렀던 도쿄국제영화제. 차기작 일정으로 바쁜 안 감독님보다 먼저 현장을 찾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상영관에 전시한 아가미 포스터와 소책자였다. 수많은 경쟁작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해주신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시기 전까지 2회 차 상영을 진행했는데 많은 관객이 찾아 만석을 이뤘다, 아가미가 영화제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작품이다”라는 담당 스태프의 귀띔에 기분도 한껏 들떴다.

 


11월 3일에 도착한 안 감독님은 후지츠 료타(TIFF 애니메이션 부문 프로그램 어드바이저) 씨의 사회로 열린 ‘감독과의 토크’에서 아가미가 전하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와 문학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션의 힘을 설명했다.

 


특히 구병모 작가님의 말을 빌려 관객들에게 “아가미를 갖는 순간을 맞자”고 강조했다. 토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들의 관심은 무척 뜨거웠다. 어느 관객은 “안 감독님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고 위안이 됐다”는 말을 전했고 메모지에 한글로 감상 평을 적어 건네는 분도 있었다. 안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려 미리 한글로 편지를 써 온 열성 관객도 만났다. “‘나도 아가미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이가 너무 많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아가미를 보고 사실은 아가미를 이미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라는 소감을 전하면서 감독님의 손을 한참이나 부여잡았던 분도 있었다.

  


어느 관객은 도쿄의 출판 거리 진보초에 있는 서점에 부탁해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발간한 ‘스페셜 북 안재훈 by 애니메이션’책을 직접 사 들고 현장을 찾기도 했다.


이후 안 감독님은 캐리커처로 관객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직접 그려주면서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눴다. 오랜 기다림에도 많은 관객이 줄을 서는 광경에 동행 취재하던 영화제 기록팀은 매우 감동적이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영화제 담당자는 “우리에게 꼭 안내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서 영화제 전체 스태프가 있는 사무실로 이끌었다. 분주히 작업 중이던 50명이 넘는 스태프가 우리를 박수로 맞았다. 안 감독님은 “제 작업실에는 ‘친절하라,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여러분의 친절로 애니메이션이라는 힘든 싸움을 하는 데 힘을 얻었다”고 화답했다.


반갑게 맞아준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사람이 살다 보면 세계가 넓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자원봉사를 통해 세계의 많은 창작자를 만나고 영화와 함께한 관객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세계가 넓어질 것”이라고 격려했다.
 

 

영화제 담당자는 나중에 “감독님의 말씀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났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는데 작품과 감독님을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대하는 영화제, 감정을 함께 나눈 관객, 자원봉사와 스태프 모두 우리에게 고맙고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해주었다.

 


한승훈 프로듀서
<소중한 날의 꿈>의 제작 프로듀서를 시작으로 <메밀꽃 필 무렵>·<운수 좋은 날>·<소나기> 프로듀서, <무녀도>, <아가미>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형슬우 감독의 기록>
안재훈 감독님으로부터 아가미를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제가 공식 상영하는 한국 영화는 아가미가 유일했다. 애니메이션 왕국 일본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는 것도 의미가 컸다. 최근 빔 벤더스의 걸작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영화에 나온 도쿄 화장실을 구경하고 픈 참이었는데, 일본에 갈 구실을 제대로 찾은 난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유락초의 도호 시네마 샹테 극장 앞에 도착하자 일본 영화 역사상 최고의 인기 아이콘인 고질라상이 눈에 들어왔다. 고질라는 카도가와 영화사의 효자 IP로 현재까지도 신작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하나의 창작물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게 꽤 부러웠다.

 


안 감독님은 관객들과 지인에게 인사를 전했다. 한국 영화 상영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유명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시오타 슈조 씨와 다케우치 고지 씨도 안 감독님과의 인연으로 극장을 찾았다. 총 세 번 상영해 관객이 분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달리 많은 관객이 객석을 차지해 내심 기뻤다.

 


애니메이션 평론가 후지츠 료타 씨와 안 감독님의 토크는 꽤 인상적이었다. 안 감독님은 “초기부터 최신 작품까지 종이와 연필을 사용해 작업을 이어가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부럽다”면서도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는 시대 변화에 맞춘 AI 시스템으로 일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밝혀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는 유연한 스튜디오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상영 후 진행한 사인회에는 애니메이션 팬, 성우, 한국영화 애호가, 여행 왔다가 우연히 들른 한국 팬 등 다양한 관객이 안 감독님을 반겼다. 우린 아가미 필름 컷이 들어간 키링을 선물하며 소중한 기억을 선물했다.

 


모든 공식 행사가 끝나고, 연필로 명상하기와 도쿄국제영화제는 또 다른 선물을 주고받았다. 영화제 사무국을 방문해 전 스태프와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모두 영화로 이어져 있고,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인 이들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이튿날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가는 길’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 도미니카공화국, 미국, 일본에서 모인 감독들은 애니메이션을 직업으로 삼게 된 각자의 삶과 작업 방식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살아온 환경, 나이, 그림체만 봐도 확연히 다른 네 사람의 공통점은 창작자가 하고 싶은 가치 있고 좋은 이야기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수많은 콘텐츠가 나오지만 실사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다큐멘터리든 콘텐츠는 스토리로 통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모두의 삶은 유한하고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간다. 언제 죽음을 맞는지, 어떻게 죽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나와 타인의 삶도 우연과 운명이 켜켜이 쌓여 인연이 된다. 아가미를 통해 만났고, 아가미가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창작자들의 열정과 재밌는 인연을 추억한다.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아름다웠던 경험을 간직하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본다.

 


형슬우 감독
다수의 단편 영화를 연출하고 가끔 영화, 드라마에 출연했다. 2023년 장편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를 선보인 후 영화계 곳곳에 출몰하며 재밌을 만한 것들을 찾고 있다.

 

 

<배우 박지연의 기록>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아가미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아가미를 통해 공연이나 실사 영화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마지막 바닷가에서 곤과 소녀가 나누는 대화 장면을 보면서부터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될 때까지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이 먹먹함은 무슨 감정일까. 그때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외로움에 대한 공감이었던 것 같다. 강하에게 의지했던 곤의 마음과 거칠었지만 곤에게 똑같이 의지했던 강하의 마음도 다 사랑의 한 모습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강하를 찾아 바다로 돌아가는 곤이 살아가기 위한 자기만의 선택이겠구나’하면서 그를 이해하고 응원하게 됐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들이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가여우면서 우리의 이야기 같아 더욱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위로받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애썼다. 앞으로도 너의 아가미를 갖고 잘 숨 쉬고 살아가라. 함께 본 관객들도 나와 같은 마음을 느꼈으리라 여긴다.

 


상영이 끝나고 여운이 가시지 않은 관객들이 안 감독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 사람이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과 함께 온다는데, 여러분의 인생을 가지고 제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안 감독님의 인사 말씀을 깊이 새긴다.

 


배우 박지연
영화 <루비>를 비롯해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간호사 홍정란 역을 맡아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줬고 <소년심판>, <지옥에서 온 판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에서 꼭 필요한 연기를 선보였다.

 


<박윤희 통역사의 기록>
제37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안재훈 감독님의 작품 아가미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영화제 라인업 기자회견을 통해 처음 접하고 굉장히 기뻤다. 아가미는 일본 영화 팬들이 공감할 만한 작품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상영 당일, 영화제 측이 마련한 교류 라운지에서 일본 국내외 영화 관계자와 외신 기자들의 업무를 돕고 크고 작은 이벤트를 진행하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던 내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아가미 상영 후 안 감독님과 관객이 소통하는 자리에 통역이 필요한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타지에서 만나면 더욱 반가운 한국인, 게다가 궁금한 작품을 만든 감독님을 도와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참가했다.


바람이 불어 쌀쌀했던 오후에 안 감독님과 처음 만났다. 먼 곳에서 오신 감독님과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가득 안고 온 일본 팬들이 즐거운 기억을 담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한 분 한 분의 말씀을 하나라도 놓칠까 봐 귀를 쫑긋 세우고 말을 전했다.

 


소통을 도우며 지켜본 감독님은 정말 따뜻한 분이었다. 종이가 없다는 팬에게는 직접 준비한 종이에 정성을 다해 사인해주시는 모습, 작품을 보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하는 팬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며 정성스럽게 그리고 때론 유머러스하게 대답해주는 모습이 좋았다. 2D 애니메이션에 대해 얘기할 때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면서도 열정이 가득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 한편에 있는 영화감독 혹은 유명인에 대한 이미지와는 다른 감독님의 모습에 단숨에 팬이 됐다. 단 하루 동안 감독님과 같이 지냈음에도 선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성품을 오롯이 느꼈다.

 

 

그리고 스스로 잊고 있었던 좋아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일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따뜻하고 올곧은 마음, 작품에 대한 열정이 돋보이는 안 감독님과 함께하게 돼 영광이었다.

 


박윤희
TIFF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안재훈 감독과 관객과의 토크 프로그램에서 통역을 맡았다. 일본에서 대학 졸업 후 현재 출판업계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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