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호에서 프롬프트에 대한 글을 썼는데 또다시 같은 주제를 가져왔다고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주제는 아무리 반복해도 모자라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AI 콘텐츠의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꽤 많은 사람이 AI를 쓰고 있지만 정작 AI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프롬프트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사람이 많다. 프롬프트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는 것과 같다. 내비게이션은 운전자보다 똑똑한 듯 보여도 엉뚱한 목적지를 입력하면 제대로 안내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프롬프트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서 엉뚱한 결과가 나오면 ‘바보 AI’라며 탓하곤 한다.
사실 프롬프트 작성은 구글에서 정보를 검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찾고자 하는 단어나 표현을 정확히 입력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AI에게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지시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AI는 “알아서 잘 해줘”가 통하지 않는다.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고 정확한 목적지를 찍어 주는 일, 그것이 바로 프롬프트 입력이다.
예를 들어 스릴러 영화의 도입부를 AI로 작성한다고 해 보자. 주인공은 귀여운 여자아이와 20대 청년으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여자아이의 부모님을 찾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복잡하고 위험한 범죄 사건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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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에서의 프롬프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을 응시하며 곰곰이 생각하는 소녀”로는 위의 이미지가 생성되지 않습니다. 이 이미지는“A girl who puts her finger on her lips, raises her head, stares at the sky, and thinks deeply”를 입력하여 도출된 것입니다.(미드저니가 한글 적용이 되기는 하지만 아직은 영어 프롬프트가 더 잘 작용되는 것 같습니다.) |
만약 이런 설정을 가지고도 프롬프트에 단지 “어린 여자아이와 청년이 사라진 부모를 찾으러 간다”라고만 대충 입력하면 어떻게 될까? AI가 기대 이상의 친절함을 발휘해 우리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이야기를 선물할 수도 있다. 갑자기 밝고 명랑한 동화 속 모험이 시작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로맨틱 코미디가 되어 “부모님을 찾다가 사랑까지 찾았다!”같은 황당한 전개를 펼칠 수도 있다. 이런 결과물을 마주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프롬프트는 최소한 다음의 예시처럼 명확히 작성해야 한다. 강의 자료로 활용하는 이미지에서 보듯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시놉시스의 구성과 매우 유사하다.
시놉시스란 무엇인가? 작품 전체의 흐름과 의도를 짧고 간결하게 정리한 글로 그 안에는 장르, 등장인물, 사건, 목표, 세계관 같은 핵심적인 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 프롬프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짧고 간단한 문장이라도 이러한 핵심 요소가 모두 명확하게 포함되어 있어야 AI가 정확히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올바른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다.
좋은 프롬프트란 바로 이렇게 AI가 혼란 없이 사용자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도록 안내하는 친절하고 정확한 지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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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롬프트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강의 자료 일부입니다. |
많은 사용자가 실제 겪는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에서 AI에게 연설문 작성을 요청했다고 가정해 보자. 사용자는 단순히 “삶의 소중함을 전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써 줘”라고만 지시했다. AI는 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YOLO(한 번뿐인 인생이니 즐기자!)’와 같은 자유롭고 경쾌한 메시지를 생성할 수도 있다. 현장에서 이런 연설문을 마주한다면 어떻겠는가? 아마 행사장은 예상하지 못한 어색함과 당황스러운 분위기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는 AI가 말을 잘못 알아들어 생긴 게 아니다. AI는 지시받은 그대로의 텍스트를 따라 충실하게 글을 생성할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사용자가 연설의 청중이 어르신들이라는 점이나 그들의 삶의 가치관, 세대적 감수성 같은 구체적이고 중요한 요소를 프롬프트에 명확히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간의 분위기나 현장의 맥락을 빠르게 파악해 즉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상황 속에 있는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다. AI에게 정확한 상황과 맥락을 제공하지 않은 채 나온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AI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프롬프트가 잘못되었다면, 그 책임은 AI가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프롬프트를 대충 써도 제법 그럴듯한 글을 만들어 주는 AI를 보며 신기하고 대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미 AI를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AI는 사용자가 지시하지 않은 내용을 함부로 덧붙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결과물을 보고 내가 무엇을 빠뜨렸는지 정확히 알아채고 더 나은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가 마치 똑똑한 비서처럼 스스로 그럴싸하고 괜찮아 보이는 말로 문장을 완성해 놓으면 사용자는 쉽게 현혹된다. 애써 다시 고민하고 수정하기보다는 그냥 그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기억하라. AI는 기본적으로 ‘빈칸 채우기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AI는 완벽하고 깔끔한 결과를 추구하기 때문에 프롬프트가 애매하거나 부족하면 어떻게든 스스로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가장 보편적이고 익숙한 패턴으로 빈 공간을 메우려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어 “모험을 떠나는 영웅”이라는 간단한 프롬프트를 입력했다고 가정해 보자. AI는 구체적인 지침이 없으니 마법사와 용이 등장하고 검과 마법이 어우러진 어디서 본 듯한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를 자동으로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독특하고 참신한 세계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너무 흔한 클리셰 덩어리로 가득 찬 이야기가 탄생하고 만다.
이렇게 AI가 내놓는 그럴싸한 결과물에 만족하면 안 된다. AI의 결과물을 보고 순간 현혹되기보다는 내가 전달한 지시가 충분히 구체적이고 명확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AI를 진정한 창작의 파트너로 만들고 싶다면 프롬프트 작성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AI는 감이나 느낌만으로 다룰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AI를 진정한 창작의 도구로 활용하려면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시가 필요하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관과 분위기, 캐릭터의 감정과 상황에 대한 세부 사항을 명료하게 설정해 프롬프트로 전달해야만 AI가 제대로 작동한다.
특히 창의적인 작업을 할 때 AI에게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AI는 매우 지능적이고 효율적이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구체적인 지침 없이 AI에게 글을 맡기면 결국 AI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일반적이고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선택하게 된다. 즉 당신의 창작물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서 이미 본 듯한 그저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AI를 비서에 비유해 보자. 비서는 정확한 업무 지시를 받았을 때 가장 뛰어난 결과를 내놓는다. 만약 당신이 비서에게 “대충 좋은 걸로 알아서 해 줘요”라고 말한다면, 당신이 상상했던 창의적인 결과물이 아닌, 대충 모두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받아 들게 될 것이다. 이 순간부터 창작자는 더이상 자신의 창작물을 주도하는 주인이 아니라 AI가 펼쳐놓은 평범하고 그럴싸한 결과에 끌려다니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혹시 당신은 과거에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기대 이상의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은 후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이제는 그 후임을 ‘모셔야 할 때’다. 그 후임이 내놓은 아이디어가 당신의 지시와 기대를 뛰어넘었다는 것은, 당신의 역량이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당신의 지시가 모호해 오랜 고민 끝에 힘들게 결과물을 들고 온 후임이라면,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격려를 표하고 다음에는 더 정확하고 분명한 업무 지시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AI 시대의 창작자는 더욱 다방면으로 심미적이고 인문학적인 이해와 폭넓고 다양한 경험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참신하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구상하고, AI에게 그것을 정확히 지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창의성을 확장해 주는 도구일 뿐, 그 창의성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창작의 방향과 깊이를 결정짓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정확한 프롬프트는 정밀한 설계도와 같다. 설계도가 세밀하고 정확할수록 AI는 더욱 놀랍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처음에 제시했던 막연한 프롬프트인 “어린 여자아이와 청년이 사라진 부모를 찾으러 간다”보다는 다음과 같은 프롬프트를 제공할 때 훨씬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20대 남성 주인공과 귀여운 여자아이가 함께 부모님의 실종 현장을 조사한다. 조사는 작은 해안 마을에서 시작되며, 마을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마을에 오래된 등대가 있고, 그곳에서 실종된 부모의 흔적을 발견한다. 사건이 가진 범죄적이고 어두운 비밀에 점점 다가가면서, 두 주인공은 정체불명의 위협과 긴장감을 느끼며 이야기는 점점 어둡고 음울하게 흘러간다. 이 이야기를 긴장감 있는 스릴러 영화의 도입부 형식으로 작성해 줘.” 이러한 프롬프트를 사용하면 AI는 혼란 없이 이 요청에 딱 맞춘 이야기를 제공하게 된다. 다음은 위의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얻어 낸 도입부다.
안개가 자욱한 아침, 작은 해안 마을의 오래된 등대가 침묵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20대 청년 민호는 등대 앞에서 불안하게 주변을 살피는 8살 여자아이 수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수빈의 부모님이 이 등대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정보를 듣고 이곳을 찾은 참이었다.
“오빠, 여기 너무 무서워….”
수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수빈아. 꼭 찾아낼 거야.”
민호가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지만, 그의 눈에는 불안과 긴장감이 가득했다.
그때 등대 문이 삐걱대며 저절로 열렸고, 어둠 속에서 싸늘한 기운이 천천히 스며 나왔다. 민호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한 걸음 내디뎠다. 그의 뒤로는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는 마을 주민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앞서 제시한 도입부가 다소 아쉽거나 막연하게 느껴졌다면, 아마도 프롬프트에서 제공한 세부 사항이 충분히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더 구체적인 장소의 분위기나 등장인물의 과거 이야기, 사건이 벌어지게 된 배경 같은 디테일한 요소를 포함시켰다면 AI는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좋은 프롬프트는 단지 결과물을 좋아지게 할 뿐만 아니라 창작 과정 자체를 효율적이고 즐겁게 만든다. 원하는 결과를 처음부터 분명하게 전달하면 AI는 사용자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정확하게 반영한 콘텐츠를 더욱 빠르고 명확하게 만들어 낸다. 반대로 모호하고 부정확한 프롬프트는 결과물의 수정 작업을 반복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창작자는 불필요한 시간과 스트레스 속에서 지쳐 버릴 수 있다.
즉 프롬프트 작성은 AI와 협업하기 위한 초정밀 지시문을 만드는 과정이다. AI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그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느냐는 오직 인간의 프롬프트 작성 능력에 달려 있다.
이제부터 AI와 소통할 때는 대충 빈칸을 남겨 두지 말자. AI에게 정확하고 명확한 프롬프트를 제공할 때 비로소 AI는 당신의 가장 든든한 창작 파트너가 될 수 있다. AI를 건강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쳐 나가길 바란다.
기억하자. AI는 결코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창의성과 가능성을 더욱 넓고 깊게 확장시키는 도구다. 당신의 아이디어가 반짝일 때 비로소 AI 콘텐츠도 가장 밝고 선명한 빛을 내며 탄생할 것이다.
김한재
·강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과 교수
·애니메이션산업, 캐릭터산업, 만화산업 백서 집필진
·저서: 생성형 AI로 웹툰·만화 제작하기(2024)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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