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프사 열풍이 지나간 자리

최영균 기자 / 기사승인 : 2025-05-02 08: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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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최근 SNS를 중심으로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열풍이 불었다. 자신의 사진이나 풍경, 반려동물 사진 등을 지브리 스튜디오가 만든 애니메이션처럼 AI가 변환한 이미지를 공유하면서 너도나도 마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된 듯한 놀이를 즐겼다.


이를 두고 AI 활용 대중화의 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창작과 모방, 인간과 기술의 경계가 어디인지 다시 묻는 상징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무엇이 남아 있을까.

 

 

바통 이어받은 바비 박스 챌린지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열풍은 사진 속 인물을 액션 피규어처럼 바꿔주는 바비 박스 챌린지로 이어졌다. 챗GPT에 전신사진을 올리면 이를 패키지에 포장된 바비 인형 피규어 이미지로 변환해 준다. 원하는 소품이나 패키지에 들어갈 문구, 색상 등을 프롬프트에 입력하면 실제 상품과 거의 흡사한 이미지를 생성한다.

 

 

소파에 엎드려 양발을 포갠 채 카메라를 바라보는 강아지 사진이 붉은 머리와 녹색 스웨터, 개 뼈 모양의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찬 여성으로 바뀌는 영상이 화제를 모으면서 반려동물을 사람처럼 바꾸는 동물의 인간화 이미지 생성 놀이도 유행으로 번지고 있다. 또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AI로 생성한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를 바탕에 두고 직접 수작업으로 그린 모사 이미지가 올라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밈 (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영국 BBC는 재스민 엔버그 이마케터 수석 소셜미디어 분석가의 말을 인용해 “생성형 AI는 사람들이 트렌드를 만들고 이를 활용하는 것을 더 쉽고 빠르게 해준다”며 “무엇보다 AI 기술이 디지털 생활에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면 서 AI로 인한 트렌드가 SNS에 자주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도 이미지 만들어드려요”
기존 플랫폼들도 이미지 생성 기능을 속속 추가하면서 흐름에 올라탔다.


외신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의 AI 스타트업 xAI가 선보인 챗봇 그록(Grok)은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프로필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기능을 추가했다. 세계 최초의 AI 사진 앱 알티즈(Artisse)와 AI 기반 사진 보정 앱 포토르(Fotor)도 가세했다. 알티즈는 이미지 생성 외에도 결과물을 포스터, 프로필, 굿즈 등 다양한 형태로 출력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편 지브리 프사 열풍에 편승해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애니메이션 스타일 이미지를 유료로 만들어준다는 판매자들의 글이 올라와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운영사는 “AI 생성 이미지의 저작권 및 소유권에 대한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 해당 상품 거래가 분쟁 소지 및 법적 이슈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AI를 통해 생성된 이미지 기반 상품에 대해 거래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AI 활용 대중화 ‘성큼’
이처럼 지브리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이미지를 생성해 공유 하는 놀이는 AI 대중화의 새로운 변곡점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이번 열풍에 힘입어 챗GPT 가입자 는 5억 명을 돌파(3월 말 기준)했다. 2022년 11월 챗GPT 가 처음 출시된 이후 2년 4개월 만으로 이용자는 지난해 말 3억 5,000만 명에서 3개월 만에 30% 이상 급증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3월 말 자신의 X 에 “26개월 전 챗GPT를 출시한 후 5일 만에 가입자가 100만 명이 됐다. 지금은 1시간 만에 100만 명이 늘어났다”고 밝히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 인덱스가 집계한 조사에 따르면 챗GPT 국내 일간 활성 이용자 수 (DAU)도 챗GPT에 이미지 생성 기능이 더해지면서 한 달 만에 50% 이상 껑충 뛰었다.


AI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챗GPT를 쓰게 되고, 많은 지식이 없어도 작가 못지않게 감성적인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AI의 대중화가 성큼 다가왔다. 이미지 생성 AI 기술이 그간 디자인이나 예술 등 특정 분야에 국한됐다는 인식을 넘어 대중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개인정보를 학습 데이터로 활용
그렇다고 지브리 프사 열풍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아 보인다. 챗GPT가 사용하는 사진 속 인물의 초상권 문제,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보호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정보인권연구소, 법무법인 지향으로 구성된 디지털시민권리사업단이 메타와 X가 적법한 근거 없이 이용자 개인 정보를 AI 모델 학습의 훈련 데이터로 이용한 것과 동의 철회를 어렵게 한 것을 두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한 건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약관에 따르면 메타는 AI 학습을 위해 공개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내용을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엔 게시물과 사진, 캡션 등이 포함된다. 단, 친구나 가족 등에게만 공유하는 비공개 게시물과 메시지는 활용하지 않는다. X도 약관을 통해 공개된 게시물을 기계 학습에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시민권리사업단은 “AI 개발이라는 명분 뒤에 가려진 감시와 개인정보 침해를 그냥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법적 대응과 함께 정보 무단 사용의 문제점과 옵트아웃 (opt-out) 방법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인다.


옵트아웃은 거부 의사를 밝혀 정보 수집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현재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X 등 세계적으로 이용자가 많은 SNS와 대부분의 생성형 AI가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AI 모델 학습 목적으로 사용 중이다. 이 과정에서 사진은 물론 SNS에 올린 게시물의 취향이나 소소한 자신의 정보를 AI가 학습하고 저장하는데, 이는 다른 사람의 AI 이용에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플랫폼사의 데이터 수 집을 원치 않는다면 사용 중지를 설정해야 한다.


더욱 깊어진 저작권 침해 논란

하지만 무엇보다 AI가 등장할 때부터 불거진 저작권 침해 논란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연출한 이시타니 메구미 감독은 자신 의 SNS에 “지브리를 더럽히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절망스럽다. 지브리 브랜드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행위”라는 글을 올리며 성토했다.


원피스 시리즈의 또 다른 에피소드를 연출한 헨리 소로 감독도 “지브리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원작 아티스트들을 기분 상하게 하고 화나게 하는 것 외에 무엇을 성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AI가 특정 그림체를 모방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는 법적 다툼을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작가조합(Authors Guild)이 주도해 오픈AI를 상대로 무단 저작물 사용에 대해 책임을 묻는 집단 소송이 진행 중 이다.


외신에 따르면 조합의 법률 대리인 측은 “창작자의 동의 절차나 적절한 보상 체계 없이 저작물을 AI 학습에 활용하는 행위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며 “AI 모델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훈련 데이터로 활용했는지 여부가 법적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조합은 앞서 3월 AI 이미지 생성 플랫폼이 특정 화풍을 학습하는 방식에 대한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공개 성명을 발표했다. 조합은 “창작자의 스타일을 AI가 모사하는 것은 창작물의 윤리적, 법적 기반을 흔드는 행위”라며 미국 저작권청에 관련 정책 마련을 요청했다.


이에 오픈AI 측은 “개별 예술가의 고유한 표현 양식 복제는 지양하나 보다 광범위한 스튜디오 스타일의 활용은 허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잘 알려진 공인이나 혐오를 상징하는 표현, 인종적 특징을 묘사한 이미지 등을 생성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단순히 화풍을 따라해 이미지를 생 성한 것은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다. 구체적인 표현이 아니라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빌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작권 침해를 인정받으려면 특정 화풍의 독창적인 표현을 구체적이고 상당 부분을 모방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창작 현장에서는 이번 열풍을 계기로 고유한 창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무단 사용하는 걸 막고 저작권이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와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애니메이션계의 한 관계자는“제작 현장에서 AI를 쓰고 있지만 다른 사례의 모방보다 창작의 효율성과 완성도를 높이려는 목적”이라며“AI가 특정 스타일을 베끼는 건 창작자의 의도를 왜곡하고 권리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이러브캐릭터 / 최영균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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