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A는 3D 캐릭터 디자이너이자 조각가로 X라는 제목의 캐릭터 조형물 도면을 작성했다. A처럼 조형물 제작을 업으로 하는 B는 예술 작품을 설치해야 하는 건설사로부터 대가를 받고 J단지에 조형물을 설치했다. B가 만든 조형물은 A가 창작한 X라는 제목의 조형물에서 일부 모양만 바꿔 Y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었다.
이에 A는 자신의 미술 저작물을 B가 무단 복제해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 반면 B는 저작권법 관련 규정상 건축물이 아닌 경우 설계도면에 따라 입체 모형을 만들더라도 저작권법상 복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A와 B 중 누구의 주장이 타당할까?
(본 사례는 대법원 2019. 5. 10. 선고 2016도 15974 판결 및 그 하급심 판례의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 각 판결의 사실관계를 각색한 것임을 밝히며,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본 칼럼과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 있음을 알립니다.)
해설
저작권법 규정 및 문제점
저작권법 제2조 제22호에 따르면 복제란 복사 등의 방법으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건축물의 경우에는 그 건축을 위한 모형 또는 설계도서에 따라 이를 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건축을 위한 모형 또는 설계 도서에 따라 이를 시공하는 행위를 건축물에 한정한다고 볼 것인지, 아니면 건축물에 있어서의 복제의 예시에 불과하다고 볼 것인지 여부가 문제다.
이 사건 도안이 저작물에 해당하는지 여부
저작권법 제4조 제1항 제4호는 미술 저작물의 일종으로 응용미술 저작물을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2조 제15호에서 응용미술 저작물에 관해 ‘디자인을 포함해 물품에 동일한 형상으로 복제될 수 있는 미술 저작물로서 그 이용된 물품과 구분돼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 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사건 도안은 조각가 A가 자신의 사상이나 일정한 주제의식을 담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린 창작물인 사실, 이 사건 도안에는 그 형상화하려는 조형물의 재질과 규격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어 누구나 이 사건 도안만 있다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조형물을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실, 실제로 B 또한 이 사건 도안에 의거해 조형물 Y를 제작한 사실이 인정되는바, 이에 의하면 이 사건 도안은 그 자체로 물품에 동일하게 형상화될 수 있는 응용미술 작품의 일종이고 그 이용된 물품(이 사건의 경우 형상화된 또는 형상화될 조형물)과 구분돼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응용미술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도면을 사용해 조형물을 만든 행위가 복제에 해당하는지 여부
실제로 위 사실관계의 바탕이 된 대전지방법원 2015. 9. 15. 선고 2014고단345 판결에 대해 피고인 B는 도면을 사용해 조형물을 만든 행위가 복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 오해의 주장을 내세웠고 대전지방법원 2016. 9. 22. 선고 2015노3038 판결은 B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저작권법 제2조 제22호는, 복제는 인쇄·사진 촬영·복사·녹음·녹화·그 밖의 방법으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유형물에 고정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것을 말하며, 건축물의 경우에는 그 건축을 위한 모형 또는 설계도서에 따라 이를 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B가 이 사건 도안에 따라서 이 사건 조형물을 제작한 행위는 설령 그 이전에 이 사건 도안이 형상화한 조형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사건 도안에 따른 관념적인 조형물의 복제로 위 조항에서 정의하는 복제에 해당한다(응용미술 저작물은 위 정의상 복제가 당연히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B는 위 후단 규정을 들어 건축물이 아닌 이 사건 조형물의 제작은 저작권법이 정의하는 복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는 그 특성상 기능적 저작물인 도형 저작물에 해당하지만 저작권법 제4조 제1항 제5호는 건축물,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 그 밖의 건축 저작물이 이 법에서 말하는 저작물에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는 그 자체로 건축 저작물에 포함된다. 따라서 만일 ‘건축물의 경우에는 설계도서에 따른 시공도 복제에 포함된다’ 는 저작권법 제2조 제22호 후단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에 의거해 건축물을 완성하는 행위가 저작권법상의 복제에 해당한다고 해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따라서 위 규정은 저작권법상 복제의 개념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복제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확인 규정으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해석해야 한다.”
대법원 2019. 5. 10. 선고 2016도15974 판결에서도 “위 조항의 후문은 건축물의 경우에는 그 건축을 위한 모형 또는 설계도서에 따라 이를 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저작물인 건축물을 위한 모형 또는 설계도서에 따라 건축물을 시공하더라도 복제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려는 확인적 성격의 규정에 불과하다”고 판단해 법리 오해의 잘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저작권법의 규정 및 이에 대한 판례의 해석에 따르면 2차원으로 존재하는 타인의 도안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3차원적인 조형물로 제작한 행위 또한 복제 행위로 저작권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저작권법 관련 규정상 건축물이 아닌 경우 설계도면에 따라 입체 모형을 만들더라도 저작권법상 복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B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으며 A의 주장에 따라 B는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한다.
이예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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