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에 거는 기대

장진구 기자 / 기사승인 : 2026-06-02 08: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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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이 주목받고 있다. AI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으로 제작 환경이 바뀌고 창작자 역할이 갈수록 더 중요해지면서 감각적이고 재능 있는 크리에이터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변방에 머물던 비주류는 K-애니메이션의 체질을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EBS, 공모전 통해 신진 크레이이터 발굴
EBS는 생성형 AI 애니메이션 시리즈 공동제작 프로젝트 공모전을 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기술 활용성이 돋보이는 작품 5개를 선정했다. 선정 결과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자본력과 인프라를 갖춘 대형 스튜디오가 아닌, 1인 창작자나 2∼3명으로 이뤄진 소규모 팀들이 기획한 프로젝트들이 모두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번 공모는 생성형 AI 기술로 기존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참신한 기획력을 갖춘 신진 크리에이터를 발굴해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마련했다고 EBS는 설명했다. EBS는 이들 작품을 12월에 방영할 예정인데 기존의 틀을 깨는 신선하고 실험적인 비주얼과 내러티브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외 영화제 잇단 초청, 독립 작가 저력 입증

최원정 감독의 6분짜리 단편작 ‘새의 랩소디’가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단편영화 경쟁 부문인 라 시네프 섹션에 초청받았다. 라 시네프는 전 세계 영화학교의 중·단편영화를 소개하며 차세대 영화인을 발굴하는 부문이다. 지난해 이 부문에서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허가영 감독의 ‘첫 여름’이 1등상을 받았다.

 

 

6월에 개봉하는 허평강 감독의 장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제50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비경쟁 특별섹션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또 정해지 감독의 ‘디너‘와 박지연 감독의 ‘귀(耳)로의 여행’은 미드나이트 스페셜 단편 경쟁 부문, 이용선 감독의 ‘직장인 체육대회’와 김연우 감독의 ‘핑거뱅’은 각각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이트 스페셜 섹션, 졸업작품 부문에서 관객을 만난다.

 

이처럼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해외 영화제에서 들려오는 잇단 낭보는 톡톡 튀는 기획력과 독창성으로 무장한 우리 독립 작가들의 저력을 입증한다.


애니메이션산업협회-독립애니메이션협회 맞손
독립 작가들의 약진이 이어지면서 기성 애니메이션 업계도 이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는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와 손 잡고 정보 공유와 인적 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키로 다짐했다. 이들이 손을 맞잡은 건 참신한 인재 발굴과 상업 무대 진출 확장이란 서로의 니즈와 추구하는 방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산업협회는 AI 시대의 도래로 애니메이션 제작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실제 제작 현장에서는 생성형 AI가 채색, 배경 합성, 단순 렌더링 등 막대한 인력과 시간을 소모하던 공정을 대체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 툴을 다루는 역할은 빠르게 줄어드는 대신 프로젝트의 방향과 정서, 작품 고유의 스타일을 기획하는 핵심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껍데기를 만드는 기술이 흔해지고 평준화될수록 알맹이를 채우는 연출자의 감각이 훨씬 중요해지리란 판단이다. 이에 산업협회는 독립 작가들의 독창적인 감각을 상업 프로젝트에 반영하고, 작가들에게 비즈니스 감각을 키우는 기회를 제공해 기성 스튜디오와 독립 창작자가 상생 발전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조경훈 회장은 “앞으로 상업 스튜디오의 생존은 역량 있는 크리에이터가 존재하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프로젝트를 새롭게 설계하려면 신선하고 강력한 에너지를 외부에서 끌고 와야 하는데 고갈된 창의성을 수혈해 줄 적임자로 최근 국내외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독립 작가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인력 양성 교육 현장에 가보면 독립 장르에서 잔뼈가 굵은 인재들이 더러 있는데 결과물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며 “이런 우수한 작가들이 프로젝트에 들어오면 기존과 결이 다른 작품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신한 인재 활용·비즈니스 감각 키워 서로 윈-윈

독립협회도 반기는 모습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려는 작가들에게 더 넓은 활로를 열어주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한다.


실력파 감독들이 주축이 돼 소규모 인원으로 감각적인 작품을 만드는 부티크 스튜디오를 차리는 사례가 늘고 있고, 역량을 인정받아 이제는 웬만한 중소기업 규모로 성장한 곳도 탄생하는 흐름에 맞춰 독립 작가들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병아 회장은 “스타 감독으로 발돋움한 한지원 감독을 비롯해 스튜디오 쉘터, 피보테, 브이씨알웍스 등 독립 애니메이션계에서 활동해 온 작가들과 신진 스튜디오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요즘 협회 안에서 큰 변화가 일고 있다”며 “이번 협업을 통해 독특하고 참신한 작품이 더 많이 탄생하고 젊은 인재들이 시장을 경험하는 기회도 확대되길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유기적인 협업 모델을 구축하기까지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혼자 또는 소수의 인원과 작업하는 게 익숙한 독립 작가들에게 기성 스튜디오의 치밀한 협업 제작 시스템은 낯설 수밖에 없다. 결국 작업 방식과 생각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조 회장은 “상업 프로젝트는 철저히 계산된 일정과 시스템으로 진행하는데 수많은 이와 협업하면서 유연성을 발휘해 타협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게 독립 작가들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한 회장은 “창작자와 제작 그룹이 건강하게 협력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게 가장 큰 숙제”라며 “소규모·개인 창작자들이 길을 잃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뭘지 토론하는 시간을 조만간 가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독립’울타리 넘어 브랜드 가치 입증해야”
주류 시장에 진입한 독립 작가들이 시장의 체질을 바꾼 능력 있는 크리에이터로 인정받으려면 ‘대중의 선택’이란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예술성이나 진정성 대신 관객 수나 스트리밍 데이터 같은 수치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통한다는 확실한 성공 사례가 있어야 다음 기회가 주어지는 만큼 ‘독립’이란 울타리를 넘어 자신만의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김성일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수석 프로그래머는 “아카데미상을 받은‘플로우’는 독립 애니메이션의 문법과 감각에서 출발했음에도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며 “‘연의 편지’가 거둔 성과도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감독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중과의 접점을 넓혀가며 인정받으려는 치열한 노력이 시장의 기대치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진정한 크리에이터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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