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소비형태의 변화
콘텐츠 소비형태 변화에 주목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용 조건의 변화를 들여다봐야 한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우리가 콘텐츠를 이용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했을까. 가령 영화를 보려면 정해진 상영시간에 맞춰 극장에 가야 했고 극장에서는 스크린과 영사기라는 장비가 있어야 했다.
정리하자면 극장은 특정 장소에 해당하고 상영시간은 특정 시간을 의미한다. 장비는 특정 도구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기 위해 일부러 만든 시간은 무엇일까. 바로 특정 목적이다. 이렇듯 우리는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특정 장소, 특정 시간, 특정 도구, 특정 목적이 필요했다.
이는 영화뿐 아니라 음악이나 게임을 즐기기 위한 행위 등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었고 각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특정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이용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어떤가. 디지털 환경과 모바일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스마트 디바이스만 있으면 특정 도구 없이도 콘텐츠를 특정 시간, 특정 장소와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콘텐츠가 어떤 동기 부여나 명확한 목적을 갖고 이용하는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특정 목적이 없더라도 부담 없이 즐기는 킬링타임의 수단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사용 목적의 변화는 콘텐츠의 시간, 품질, 비용 등에도 영향을 끼친다. 과거에는 동기 부여나 목적에 따라 정해진 시간 동안 사용하기 위해 콘텐츠를 찾았다면 이제는 잠깐 생각났을 때, 시간이 비었을 때, 또는 습관처럼 이용한다. 이용을 포기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쉽고 이용 시간도 짧게 끊을 수 있다.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형태가 변화 한다면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이나 제공하는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 웹툰이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서 각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잠깐. 스마트 디바이스도 특정 도구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이를 특정 도구가 아닌 일상의 필수 도구라고 본다.
약속시간에 늦어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던 A는 버스가 오고 있음을 발견한 찰나 자신이 바지만 입고 팬티를 입지 않았단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A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버스를 탈까? 여러 강연에서 이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모든 청중은 A가 버스를 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팬티가 아니라 스마트폰이었다면 어떻게 할까. 이에 모든 청중은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여겼다. 이처럼 스마트 디바이스는 이제 이미 일상에서 없어선 안 될 도구가 됐다. 화장실에 갈 때, 샤워할 때, 밥 먹을 때, 잠 잘 때 늘 곁에 존재하는 휴대전화를 특정 도구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콘텐츠 완독률의 변화
우리는 콘텐츠의 이용 조건, 목적, 방법에 따라 이용 시간, 이용 품질 등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이해했다.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한 특정 조건들이 사라지면서 이용 시간은 무척 짧아졌다.
이는 콘텐츠 사용자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고 자유로워졌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제작자나 공급자 입장에서는 그에 맞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콘텐츠의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므로 오히려 더 큰 부담을 느끼게 됐다. 이 대목에서 두드러지는 건 바로 완독률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비형태 변화에 따라 완독률은 점점 짧아지는 추세다.
이에 각 콘텐츠별 완독률을 알아보고 그에 따라 변화하는 제작형태를 살펴보자.
포맷별로 동영상의 완독률은 43초, 그림과 일러스트는 17장, 텍스트는 30줄, 사진은 10장, 인포그래픽은 9장이라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영상은 43초 내에서 이용자의 흥미를 끌어내지 못하면 시청을 포기하고 다른 영상을 찾는다는 의미다. 웹툰도 마찬가지. 1화의 전체 분량이 평균 70컷이라고 볼 때 17컷 안에서 이용자의 흥미를 유발해야 스크롤을 내리는 행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웹소설의 경우 30줄 안에서 승부를 내야 비로소 다음 내용들을 보려고 한다.
이렇듯 특정 목적이 사라진 콘텐츠의 이용 변화는 완독률 조건을 상당히 까다롭게 했고 각 콘텐츠 제작자는 전체 이야기의 연출과 배분 방식을 새롭게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웹툰의 경우 예전에는 3화 안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점점 1화 안에서 승부가 나지 않으면 2화, 3화로조차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가 이제는 1화 안에서도 17컷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고 하니 이용자의 소비형태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급변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어쨌든 이용자의 소비형태나 완독률이 어떻게 변화됐든 간에 제작자나 공급자는 변화 조건을 잘 맞춰가면서 최적화된 형태와 방식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웹툰의 정의
이제까지 전 콘텐츠의 소비형태 변화와 그에 따른 영향 및 결과들을 얘기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콘텐츠가 단순히 그 자체의 특성만으로 제작의 형태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의 소비형태를 분석하고 파악해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최적화라는 표현에 주목하면서 웹툰에 대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루겠다. 웹툰이 IP로서 진화해가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알아야 할 것, 앞으로 예측하고 준비해야 할 것 등을 보다 심도 있게 얘기할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웹툰의 정의를 내려본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웹툰의 종주국인 만큼 웹툰이 무엇인지 모를 사람은 없겠지만 다음과 같이 정의하면 웹툰이 왜 디지털 모바일시대에 지금처럼 각광받게 됐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인정 받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웹툰은 모바일환경에 최적화된 대표적인 디지털 콘텐츠로 언제 어디서나 쉽고 빠르고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특징이 있어 지역 간의 경계는 물론 글로벌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약한다.” 웹툰은 말 그대로 모바일환경에 최적화됐다. 최적화는 어떠한 환경과 주어진 상황, 필요한 조건에 가장 적합하게 맞춰지고 구현돼 있다는 의미다. 즉, 웹툰이 모바일환경에 최적화돼 있다면 이는 웹툰이 모바일에서 이용하기 가장 적합하게 구현된 콘텐츠라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모바일환경이 원하는 가장 적합한 구현이란 무엇일까. 언제 어디서나 쉽고 빠르고 편하게라는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바일환경에서 이용자들의 소비형태가 특정이라는 제한적인 조건을 떼내고 자유로운 이용을 주 목적으로 하는 상황이 되면서 시간과 상관없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고 장소와 관계없이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되,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고 주변을 의식할 필요나 부담이 없어 편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질문을 던질 만하다.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웹소설 등도 모두 유사한 방식으로 모바일 환경에서 즐기거나 이용하는 콘텐츠인데 유독 웹툰만 모바일환경에 가장 최적화된 콘텐츠라고 내세우느냐고 말이다.
서범강
· (사)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
· 아이나무툰 대표
아이러브캐릭터 / 서범강 회장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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