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캐릭터 회사 A는 탈인형 제작사 B에게 자사 캐릭터를 형상화한 탈인형 제작을 의뢰하고 이를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다.
A사는 잔금지급 시점을 납품 이전으로 요구한 계약내용에 따라 충분한 검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이 끝난 탈인형의 사진만 보고 대금을 모두 지급했다. 이후 A사는 납품받은 탈인형의 팔이 움직이지 않자 하자보수를 요청했지만 B사는 “계약서상 ‘목적물 검사에 합격하면 보수를 지급한다’ 는 규정에 따라 보수를 지급받았으므로 목적물 검사에 합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며 거절했다. 이에 A사는 B사에 대해 어떤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
해설
B사가 주문에 따라 탈인형을 제작해 공급하고 A사가 대가를 지급키로 한 계약은 이른바 제작물 공급계약으로서 제작의 측면에서는 도급의 성질이 있고 공급의 측면에서는 매매의 성질이 있다. 위 사례처럼 공급해야 할 물건이 특정주문자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부대체물이라면 해당 물건의 공급과 함께 제작이 계약의 주목적이므로 도급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도급에 관한 민법 제668조에 따르면 도급인이 완성된 목적물의 하자로 인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때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판례는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하자가 중대하고 보수가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장기간을 요하는 등 계약해제권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할 것이고, 단지 도급인이 상당한 기간을 정해 하자보수를 청구했음에도 수급인이 그 하자를 보수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계약해제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0. 6. 10. 선고 2010다10252 판결)” 고 보고 있다.
즉 A사가 탈인형의 하자를 보수해달라고 청구했음에도 B사가 단순히 하자를 보수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계약해 제권을 행사할 순 없다. 다만 객관적으로 하자가 중대하고 보수가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장기간을 요한다고 판단되면 A사는 해당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 탈인형 제작 계약의 목적은 사람이 직접 쓰고 움직이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것인데 탈인형의 팔이 거의 움직이지 못할 만큼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움직임이 제한된다면 A사는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주장·입증해 계약을 해제한 후 물품을 돌려줌과 동시에 대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목적물에 하자가 존재하나 하자로 인해 계약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까지는 아니라면 도급인은 수급인에게 상당한 기간을 정해 하자보수를 청구하거나(민법 제667조 제1항), 하자보수에 갈음해 또는 보수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667조 제2항).
이에 따라 A사가 탈인형의 팔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계약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하자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해 보수가 가능한 하자라고 판단되더라도 A사는 탈인형의 팔이 움직일 수 있도록 보수할 것을 청구함과 동시에 발생한 손해를 입증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잔금의 지급시점을 납품 이전으로 요구하고 있어 충분한 검수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대금을 지급한 것이 문제되는지 여부와 관련해 대법원은 최종 검수 완료 및 승인 이후 잔금을 지급키로 했는데 검사에 불합격했음을 이유로 잔금지급을 거절한 사안에서 “도급계약의 당사자들이 ‘수급인이 공급한 목적물을 도급인이 검사해 합격하면 도급인은 수급인에게 보수를 지급한다’ 고 정한 경우 도급인의 수급인에 대한 보수지급의무와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수급인의 목적물 인도의무를 확인한 것에 불과하고 검사 합격은 법률행위의 효력 발생을 좌우하는 조건이 아니라 보수지급 시기에 관한 불확정 기한이므로 수급인이 도급계약에서 정한 일을 완성한 다음 검사에 합격한 때 또는 검사 합격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정된 때 보수지급청구권의 기한이 도래한다(대법원 2019. 9. 10. 선고 2017다272486, 272493 판결)” 고 보고 검사 합격은 보수지급시기에 관한 불확정 기한으로 효력을 좌우하는 조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위 사례에서 문제가 되는 조항에서 최종 검수의 의미는 잔금지급 시기에 관한 내용일 뿐 하자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해 추후 하자보수를 청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없기에 A사는 최종 검수 문구와 무관하게 하자보수 등을 청구할 수 있다.
위와 같은 계약해제 및 하자의 보수, 손해배상의 청구는 목적물을 인도받은 날로부터 1년 내에 해야 하나(민법 제670조 제1항) 기간이 도래했더라도 도급계약에 따라 완성된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과 채무불이행책임은 별개의 권원에 의해 경합적으로 인정된다(대법원 2020. 6. 11. 선고 2020다201156 판결 참조).
이에 A사는 하자보수 책임에 따른 계약해제나 손해배상을 할 수 없더라도 B사의 이행의 실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해 민법 제546조에 따라 이행불능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하자보수 비용에 대해선 민법 제390조에 따라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다.
한편 A사가 지속적으로 수정을 요청했지만 B사가 개선하지 않고 더 이상 작업이 어렵다고 통보한 것이 계약해제 요건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법원은 “이행거절로 계약을 해제하려면 채무가 계약의 목적 달성에 있어 필요불가결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채권자가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주된 채무이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부수적 채무를 불이행한 데에 지나지 않는다면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5 다53705, 53712 판결)”고 보고 있다.
즉, 계약의 내용과 목적 등에 비춰볼 때 하자보수 의무가 계약상의 주된 채무라기보다는 부수적 채무에 불과하다고 인정되면 해당 채무의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하자보수 거절을 이행거절로 보아 계약해제를 하는 것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5. 29. 선고 2016가단5081747 판결).
정리하면 A사는 탈인형의 하자가 존재하고 이로 인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 또는 이행불능으로 인한 계약해제를 진행해 대금의 반환을 요청하거나 하자보수 및 하자로 인해 발생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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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브캐릭터 / 이예희 변호사 ma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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