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떠난 자리>는 애니메이션보다 사진을 잘라 붙인 콜라주 기법의 영화에 가깝다. 고독사 현장과 방치된 1년의 시간을 타임랩스 방식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스산하고 섬뜩한 실제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한다. 작품을 위해 직접 특수 청소부로 일했던 여은아 감독의 담력과 치밀한 관찰력이 영상의 리얼리티를 한껏 끌어올렸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대학에서 게임이나 3D 모델링, 웹 디자인 같은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면서 애니메이션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스톱모션 기법 등을 섞어 졸업 작품 홍보 영상을 만들었는데, 우연히 이를 보고 호평한 강희진 감독님의 조언을 듣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났다. 1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수업에 흠뻑 빠졌다. 그때 애니메이션에 눈을 떴지만 밥벌이로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졸업 후 회사를 다니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다가 2016년 아카데미의 장편 연구 과정에 다시 들어가 <장미여관>을 만들면서부터 방향을 확실히 정했다.
첫 장편 <장미여관> 제작은 수월했나?
아이돌 가수를 선발하는 예능과 사건 이면을 파헤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모티브를 얻어 시나리오를 썼는데 영상 제작 도중에도 계속 수정했다. 애니메틱(animatics, 스토리보드에 맞춰 동작이나 동선을 시각화한 영상)을 보고 나서 이야기나 메시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난 완벽한 애니메틱을 토대로 작품을 만드는 습관이 있어 항상 애니메틱의 완성도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때그때 수정한 애니메틱에 따라 시나리오를 조금씩 고쳐갔다. 제작 기간은 다 합쳐 3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끝내고 나서 다시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녔다.(웃음) 너무 힘들었고 부족함이 많지만 내가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였기에 지금도 가장 애착하는 작품이다.
<유령이 떠난 자리>를 통해 말하려 했던 건 무엇인가?
고독사 후 발견될 때까지 단절된 시공간을 기록한 작품이다. 집안에 남은 치열했던 삶의 족적을 관객이 따라가며 망자의 삶을 짐작하게 했다. 집 안은 그가 세상을 떠난 시간에 멈춰 있지만 외부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고독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자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려고 했다. 내가 완벽히 알아야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평소 신념 때문에 특수 청소업체에 취직해 현장을 다녔다. 고독사 현장 이미지를 그대로 쓸 순 없어서 가장비슷한 배경, 가재도구, 소품을 찾아 영상을 재구성했다.
그간의 작품을 관통하는 자신만의 시선은?
열 살 때부터 이토 준지 만화의 광팬일 정도로 공포물을 좋아하는데, 호러 장르로 사람들이 말하기 불편해하고 숨기고 싶어 하는 내용을 과감히 드러내는 걸 추구한다. <장미여관에서>의 화려한 밤거리와 으슥한 뒷골목, <유령이 떠난 자리>에서의 아파트 내부와 외부 세계처럼 상반되는 두 배경을 통해 분리되거나 숨겨진 공간도 결국 하나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얻는 즐거움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거나 큰 충격을 받으면 묘한 쾌감을 느낀다. 고된 노동 후에 결과물을 돌려 보면 짜릿함을 맛보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신선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다.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나?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호러 미스터리 장르의 옴니버스 장편물을 만들고 있다. 민간요법을 향한 맹신에 관한 이야기다. 3명이 중편 하나씩 만들고 있는데 에피소드는 다 다르지만 스토리는 하나로 이어진다. 2025년 개봉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바란다. 내가 하고싶은 얘기를 호러물로 계속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아이러브캐릭터 / 장진구 기자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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