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재 교수와 함께하는 AI 활용 가이드] 소녀를 그리는 꽃빛 언어, ‘피어나 Glitch’ 제작 과정

김한재 기자 / 기사승인 : 2025-04-16 14: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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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AI 아트와 영상의 융합, 그리고 잊지 못할 감성의 한 장면

흑발의 소녀가 눈을 감은 채 꿈결 같은 바람을 느낀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물든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그 짧은 순간. ‘피어나 Glitch’는 단순한 이미지나 영상 그 이상의 무엇이다. 이 작품은 AI 아트의 감성적 가능성과 움직이는 이미지가 전달하는 정서적 울림을 한 데 모은, 감각적이면서도 사유적인 시도다. 이번 칼럼에서는 ‘피어나 Glitch’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 같은 프롬프트로 생성되고 있는 다양한 캐릭터. 길거리에서 예쁜 배우를 캐스팅하는 과정과 같은 느낌인데요 다 예쁘지만 내 의도에 맞는 이미지를 찾는 것이 관건입니다.


캐스팅은 이제 키보드로, 감성은 여전히 손끝으로

AI 이미지 생성의 핵심은 프롬프트다. 어여쁜 소녀의 이미지에 꽃빛 언어를 입히기 위해 다음과 같은 프롬프트를 구성했다.


“bang black hair cute korean girl infused with cottagecore, mythpunk, lovecore, and toycore aesthetics, nostalgic.”


이 문장에 들어 있는 단어들은 수백 겹의 감성을 내포한다. 자연의 아늑한 cottagecore, 신화적 상상력과 현대적 감각이 뒤섞인 mythpunk, 사랑과 애정의 시각적 코드인 lovecore, 장난감 같은 유쾌한 상상력의 toycore까지. 프롬프트는 마치 시처럼 쓰여야 한다. 그러면 AI는 이 언어를 읽고 수십 가지 후보 이미지를 제시한다. 거리에서 예쁜 배우를 캐스팅하듯 마음에 드는 얼굴을 찾아내는 일을 시작한다.

 

▲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이미지들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집요하게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어쩌면 뭘 이렇게까지 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작은 차이에 대한 고집으로 완성된 결과물이기에 더욱 마음이 가고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후보 중에서 어떤 인물이 그 장면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해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일은 단순한 외모나 조건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프롬프트에서 생성된 이미지라 해도 동작의 흐름이나 표정의 뉘앙스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감독의 안목이다.

 

어떤 연기를 끌어낼 것인지, 어느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강조할 것인지에 따라 이미지의 역할이 달라진다. 동시에 이미지가 지닌 고유의 감정선과 섬세함은 마치 배우의 연기력처럼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 결국 최종적인 표현은 디렉션과 해석, 즉 감독과 배우의 협업처럼 완성된다. AI는 배우가 되고 사용자는 그 배우의 연기를 이끌어내는 연출자가 되는 셈이다. 영상과 음악을 입히는 작업은 다음 호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 노스텔지어(Nostalgia)는 돌아갈 수 없지만 마음속에 살아있는 기억. 과거의 소중했던 순간이나 장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의미합니다. 주로 어린 시절, 한때 행복했던 시간, 사라진 감성 등에 대한 따뜻하고 아련한 회상을 뜻하며, 때로는 슬픔과 위로가 함께 섞인 감정이기도 합니다.(사진출처: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희망의 테이블 위에 놓인 감성, 꽃1프로젝트
‘피어나 Glitch’는 꽃1프로젝트의 ‘희망을 전하다4’ 전시에 포함된 콘텐츠 중 하나로, 단독 작품이 아닌 전시의 맥락 속에서 함께 기획한 작업이다. 3월 22일에는 해당 작품의 제작 과정을 담은 노트를 중심으로 한 라이브 강연을 진행했다. 편집 없이 전 과정을 공유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자리였다. 제작 과정을 공개하니 관객의 몰입도와 반응이 높았고 기획 의도 역시 더욱 명확하게 전달됐다.


필자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청년문간을 후원한다는 좋은 취지의 전시였기에 별도의 개런티 없이 참여했다. 공익적 취지가 분명한 기획은 창작의 사회적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피어나 Glitch’의 사례처럼 단순한 결과물 전시를 넘어 제작의 맥락과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는 창작자에게도 의미 있고 관람자에게도 깊이 있는 경험이 된다. 이러한 기획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길 바라며 이 같은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다.


꽃1프로젝트(대표 한선우)는 2021년부터 예술과 예술교육을 통해 소외된 이웃에게 희망의 빛을 전하는 전시와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작품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특별한 자리의 주제는 바로 ‘Hope on the table’. 각자의 삶에서 건져 올린 희망의 조각들이 테이블 위에 놓이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 돌아간다.


‘희망을 전하다4’의 수익금 일부는 사회적협동조합 청년문간(대표이사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의 청년 지원사업에 기부된다. 청년문간은 2017년 12월 고시원에서 굶주림 끝에 삶을 달리한 한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을 계기로 세워졌다. 산하의 청년밥상문간은 하루 한 끼, 단돈 3,000원의 김치찌개를 제공하며 지역 주민과 청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의 힘을 나누는 공간이다. 한선우 대표는 전시 소개 메시지를 통해 이러한 의도를 분명히 전달하고 있다. “한 끼는 작은 일이 아니다. 그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한다면 그건 예술보다 더 따뜻한 희망이 된다. 우리의 한 끼가 놓이는 테이블 위에 작은 희망을 올리고 싶다.”

 

청년문간이 그려내는 희망의 풍경은 ‘피어나 Glitch’가 전하는 감성의 언어와 맞닿아 있다. 마치 잊히지도 결코 사라지지도 않는 마음속 풍경처럼.

 

▲ 갤러리와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복합 문화 공간 인사이드아웃에서 진행한 강연장 모습


예술은 기억을 움직이는 기술이다 

‘피어나 Glitch’는 단지 기술로 구현된 영상이 아니다. 노스텔지어. 곧 돌아갈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살아있는 기억, 그 따뜻한 감정의 파편들을 AI라는 새로운 붓으로 그려낸 시도다. 그 소녀는 누군가의 기억 속 친구일 수도 잃어버린 감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영상이 끝나도 그 아련함은 오래도록 남는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는 그 영상 앞에서 위로받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예술은 여전히 누군가를 위한 희망이 될 수 있다. AI를 활용한 예술일지라도.

 

 

김한재
·강동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콘텐츠과 교수
·애니메이션산업, 캐릭터산업, 만화산업 백서 집필진
·저서: 생성형 AI로 웹툰·만화 제작하기(2024) 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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