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인물들은 서로에게 쉽게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그 질문이 불러올 감정이 불편하기에 그저 따지듯 퉁명스럽게 말할 뿐이다. 그리하여 거대한 악이 아닌, 작은 잘못 앞에서도 성선설과 성악설 사이에서 혼란이 찾아온다.
순자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보라고 말한다.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아이에게 나타나는 원초적인 이기심을 예로 들어 성악설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아이는 성장하며 체득한 것으로 변해 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영화는 성선설도, 성악설도 말하지 않는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역할이 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키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단 하나의 찝찝함조차 없는 평온한 하루는 쉽게 허락되지 않듯 소년의 하루도 복잡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남을 이해시킬 수도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복잡한 바람들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객석에 앉은 이들의 어떤 삶을 투영하는 것인지 쉽게 찾을 수 없다. 영화적 기복과 결말로 스스로를 투영함으로써 만족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마무리된다. 내용과 다르게 결정체가 단단한 영화를 본 것 같다. 감독의 컷이 당황스러워서 지나가는 여름을 붙잡게 된다.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갈 때까지 끝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초등학생 기준은 농어촌 전형 혜택을 받기 위해 작은 소도시로 전학을 ‘당한다.’그러나 부모가 생각한 기회는 오히려 소년이 잃지 말아야 할 기회를 빼앗고 그 심드렁한 마음은 전학 첫날 잃어버린 신발 사건으로 이어져 결국 새 학교 아이들에게 편견이 생기고 만다. 그 편견은 영문과 영준을 통해 확신이 된다.
부모가 보는 자식의 모습과 세상이 보는 자식의 모습은 다른 경우가 많다. 기준은 그 모호한 경계에 놓인 아이다. 부모 없이 단둘이 살아가는 영문과 영준 형제도 마찬가지다. 마을 어른들이 보는 모습과 또래 아이들이 알고 있는 모습은 다르다.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문과 영준을 통해 기준은 두 형제가 만들어준 현실의 짜증을 벗어날 작은 틈새로 들어가게 된다.
기준은 영문과 영준 형제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된다. 함께 어울리며 자전거 도둑질에도 가담하고 폭력에 참여한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상에 끌리게 된다.
“네가 돈이 없니, 뭐가 부족하니, 왜 그런 짓을 해?”라는 기준 엄마의 말은 소년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영문과 영준 형제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부족할 것 없는 소년의 일탈과 절실한 소년들의 범죄는 결국 다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기에.
영화 속의 인상적인 장면은 영준이 수업 시간에 장난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준의 반응이다. 친구들 머리에 물건을 던지고 모른 척하는 등 영준은 끊임없이 소소한 장난을 쳐왔다.
혐오와 짜증으로 보아오던 영준의 행동이었는데 어느 한순간 그 장난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짓는 순간, 인간의 선한 동작이 아닌 조롱에서 오는 동의의 웃음은 기준의 태도가 앞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직감하게 한다.
아버지가 돈을 건네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 돈을 받는 순간 회유되고 어른의 계획에 넘어간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소년은 소년이기에 받아 든다. 이때 영문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가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영화는 어떤 기회나 화해의 가능성을 말하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 탁 하고 멈춘다. 이 멈춤이 숨 막히는 이유는 아역 배우들의 연기에 있기도 하다. 마음의 복잡함, 어설픔, 분노, 절망, 화해, 당황스러움 등 소년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 결국 하나의 조화를 이뤄낸다.
소년의 범죄는 이상하다. 조금만 생각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결국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가난하기 때문에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 이를테면 훔치고 빼앗는. 그럼에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지만 소년의 시간 속에서 해결의 방식은 어른과 사뭇 다르다.
그러나 마땅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나 꼭 해야 하는 일을 명확히 알려주는 어른 또한 없었다. 애초에 소년의 시절에는 그런 어른이 없다.
우리는 모두 정답이 없는 그 시절을 지나왔다. 다행히 난간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상처에는 밴드를 붙일 수 있었고, 붕대를 감을 수 있었고, 약을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은 원래 선해서도, 원래 악인이어서도 아니라 도처에 있는 돌부리가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막아주는 장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절망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는 것. 이 영화는 거기까지 보여주지 않고 기대하지 않게 만든다. 2025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Film Independent Spirit Awards)에서 작품상, 감독상, 주연상을 휩쓴 아노라(Anora)를 만든 션 베이커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전 독립 영화인입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년 정도죠. 그것도 운이 좋다면 말이에요. 만약 당신이 감독이자 작가로서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면 보수를 받지 못하거나 금전적 성과도 내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3년 동안 무보수로 또는 아주 적은 돈만 받고 살아갈 수 있나요? (중략) 자신의 작품을 유명해질 기회로만 여기지 않는 분들, 자신의 작품을 시리즈나 스튜디오 영화로 탈바꿈되는 걸 막는 분들, 대형 스튜디오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개인적인 소재로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까지 말이죠. 모든 독립 영화인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자리를 지키며 싸우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요.”
감독과 배우들이 개봉을 향해 걷고 있는 길, 그 간절함이 닿는 곳은 실로 다른 경지일 것이다. 아이가 훌쩍 자라 버릴 만큼 긴 시간을 들여 영화를 만들고 개봉까지 걸어온 끝에 닿은 곳이기에.
“우리의 삶은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의미 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계속해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그것이 결국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계절이 바뀌듯 사람도 조금씩 바뀌고, 바뀌는 과정이 때로는 아프지만 지나고 보면 결국 나를 만들어준 것이더라고요. 보통 여름이 지나가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걸 영화로 담고 싶었어요.”
장병기 감독
안재훈 감독
<소중한 날의 꿈>, <아가미>와 한국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메일꽃·운수 좋은 날그리고 봄봄>, <소나기>, <무녀도>를 개봉했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영웅본색2>, <시작하는 나의 세계>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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