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훈 감독의 영화편지]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바다호랑이'

안재훈 기자 / 기사승인 : 2025-06-13 14: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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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기억하게 된 2024년 12월 3일.


그 이전에 우리 모두가 생생히 기억하는 시간이 있다. 그날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속보에 한마음으로 걱정했으며, 잠시 안도했고, 간절함은 결국 커다란 슬픔으로 우리의 삶에 각인되었다. 그날은 2014년 4월 16일이다.


사소한 것들은 의미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많은 의미를 지닌 이날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든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감정을 불러냈다.

 

학생의 손에 감겨 있는 붕대. 이에 불현듯 올라온 미안함과 슬픔. 아직 그 붕대가 작품 속에서 지닌 의미를 다 알지 못한 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게는 충분한 의미가 되었다. 한동안 수영장과 물가 근처도 가지 못했고 그해 개봉한 작품의 행사를 마치면 늘 광화문을 찾았다. 잊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가졌을 수많은 직업과 꿈, 멈춰 버린 시간. 직업을 갖고, 동료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나누는 그 당연한 경험조차 하지 못한 아이들의 일은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때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 있지만 세월호 참사는 떠올려야 하는 일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떠올려야 한다.

 


‘바다호랑이’를 만든 정윤철 감독은 또 다른 연출 방식을 통해 우리가 보아야 할 다른 그림자를 보여 준다.

 

연극 무대 위 인물 간의 구도를 다큐멘터리 같은 설정 안에 배치함으로써 제한된 환경 속에서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물만 봐도 두렵고 학생들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한 연출은 담담하게 바라보고 조용히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극장은 함께 영화를 보는 공간이지만 그 안의 객석은 각자의 고유한 자리다. 이 작품은 마치 무대 바로 앞 객석에 앉아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듯 그날의 또 다른 이야기를 관객에게 조용히 들려준다.

 

 

세월호라는 단어조차 마주하기 힘든 이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것들, 국가적 재난 앞에서 손을 내밀었던 이들의 결말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리하여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영화 속의 삶을 통해 역으로 나를 구원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평생의 구원은 아닐지라도 어느 순간의 호흡과 마음을 치유한다.

 

우리는 가슴이 답답하고 무언가 체한 듯한 시간을 지나오고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바로 그날부터.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날을 온전히 살아 낼 수 있었다면 우리의 공동체도 지금보다 더 괜찮아졌을지 모른다.

 

‘지금도 지금이지만, 저때는 더 그랬구나’하는 울분은 공동체의 또 다른 각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윤철 감독은 그날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고리를 따라 또 다른 기억들이 잊히지 않도록 우리 앞에 다시 꺼내 놓는다.

 

 

그날 학생들은 집을 떠나며 “잘 다녀올게”라고 인사했을 것이다. 잠수사들 역시“잘 다녀올게”라는 말을 나누었을 것이다. 영화 속의 이 대사는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인사, 바로‘안녕’에 대한 말이라는 감독의 인사가 아닐까.


잠수사들은 바다에서 만난 아이들을 “바다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라 부르고 “집에 있는 내 아이들”이라 말한다.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일을 겪은 이들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영화는 독특한 표현 방식을 택한다. 마치 두려워 눈을 감지 말고 아프다고 외면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장면들을 책장을 넘기듯, 또 대화를 나누듯 집중하게 만든다.


김장하 선생의 말처럼 세상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이 움직인다. 영화는 그날 또한 “왠지 오실 것 같아서”, “왠지 계실 것 같아서”라며 아이들에게 달려갔던, ‘바다호랑이’란 별명을 가질 만큼 단단했던 한 사람이 그 사건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 준다.


‘우리 사회 전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작품 속에 담긴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아니라 그 사회에서 권한을 부여받은 이들이 세상에 기여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기억이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지금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게 된다.


뉴스를 믿지 않는다며 외쳤던 유족들과 잠수사들이 죄인처럼 몰리고 비난을 받으며 다치는 과정에서 선한 행위는 왜곡된 결말로 이어지기도 했다. 약자와 피해자가 지치게 되는 이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자’고, ‘함께 살자’고 손을 내밀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픈 기억과 슬픈 기억을 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계속해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고 비로소 함께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은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 아닐까. 평소에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서로에게 ‘사랑하고 사랑하자’는 말을 건네자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말한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 그럴 때’라고. 차마 안고 나올 수 없었던 아이들, 그 미안함을 넘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을 더는 놓치지 말고 꼭 안아 주어야 한다는 것.


경수(잠수사)는 약한 사람이어서 무너진 게 아니다. ‘바다호랑이’라 불릴 만큼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만큼 더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픈 일과 우리가 당하는 불합리는 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손을 내미는 것, 잊지 않는 것이 진정한 강함이라고 말한다. 어떻게든 무너지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경수 역을 맡은 배우 이지훈 님의 집중력은 높이 평가한다. 연기 톤을 잡고 캐릭터를 구축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연출 상황이었음에도 그 안에 깊이 몰입하면서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녹아들 수 있도록 한 연기는 정말 탁월했다.


리버풀FC의 공식 응원가가 나온다. 축구 응원가를 알 리 없는 나에게 정윤철 감독은 또 하나의 ‘기억하는 방식’을 알려 주었다.

 

이제 나는 리버풀FC의 응원가를 들을 때마다 4월의 아이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바다호랑이’를 본 축구 팬으로 인해 언젠가 리버풀 경기장에 노란 리본과 함께 아이들이 불려지길 소망한다. 이를 통해 세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 슬픔이 기쁨에게, 아픔이 사랑에게, 그렇게 희망이 전해지는 일이 끊임 없이 이어지고 연대하길 바란다.


“당신이 폭풍 속을 걸을 때는 고개를 높이 드세요, 그리고 어둠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바람을 뚫고 걸어요. 빗속을 헤치고 걸어요. 그러면 당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에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노래는 틀림없이 저렇게 단단할 것이고 살아가라고 말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 잠수사로 활동한 고 김관홍 님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 주신 정윤철 감독님과 제작진께 깊이 감사드린다.

 

다큐멘터리 같은 소설을 영화 각본으로 탈바꿈시켰다. 몸을 갈아 넣어 각본을 썼으니 너무 찍고 싶었다. 배우들이 대사를 읽는 것만으로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김관홍 잠수사 유가족에게도 꼭 영화로 보여 드리겠다고 약속했던 만큼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이 영화는 감정 전달이 중요했기에 소품이나 의상 등은 최소화하는 게 맞다 싶었다. 미술로 치면 추상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니 배우들의 연기가 더 잘 보이고 관객들이 활발하게 상상하며 우리 영화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우더라. ‘바다호랑이’가 새로운 모델이 됐으면 좋겠다.

세월호 참사가 소재지만 그 현장으로 달려간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보편성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자기 일을 제치고 현장에 간 분들이 겪는 트라우마에는 다들 관심이 없었다. ‘바다호랑이’는 그걸 다룬 최초의 영화다.

국가가 그런 조력자를 방치하고 오히려 상처를 주고 있다. 실제로 잠수사들은 그 현장에서 쫓겨나면서 더 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선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정서적 교감과 유대가 필요하다.

정윤철 감독

 

 


안재훈 감독
<소중한 날의 꿈>, <아가미>와 한국 단편 문학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메일꽃·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무녀도>를 개봉했다. 현재 장편 애니메이션 <영웅본색2>, <시작하는 나의 세계> 연출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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