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작업 모두가 나의 목표를 향하는 것”_독립영화관 (27) _ 박연 감독

/ 기사승인 : 2020-03-24 09: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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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2019년 DigiCon6 ASIA에서 은상을 수상한 작품 어나더의 박연 감독을 만났다. 박연 감독은 스스로를 ‘애니메이션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자신의 진로로 결정했던 애니메이션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직업이 됨과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취미로서 박연 감독 안에 깊게 뿌리내렸다. 자신의 목표와 방향을 놓치지 않으며 나아가고 있는 박연 감독을 만나보았다.



독자들에게 소개를 부탁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계기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을 하는 박연이다. 단편 애니메이션 어나더를 만들었고, 가수 지코의 노래 balloon의 뮤직비디오와 가수 가호의 노래 fly의 뮤직비디오 영상을 제작했다. 현재는 장편 만화영화 태일이의 미술팀에서 배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학생 시절,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는 일을 좀 더 잘하는 것 같아 예고 애니학과로 진학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때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진로가 직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지금은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단편 애니메이션 어나더는 어떤 작품인가?

어나더는 어느날 한 아이의 앞에 쌍둥이 영혼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 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잘 사는데 나만 혼자 힘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남의 떡이 더 커 보인 달까. 속을 터놓고 보면 사실은 모두 나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말이다. 작품을 만들 당시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 이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봐야겠다 싶었다. 어나더는 대학교 졸업작품인데 어쩌면 내가 마지막으로 만드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상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1인 제작을 했고, 완성도를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또 보는 사람이 누구든 좋아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상업 애니메이션처럼 친숙한 아트워크가 나오도록 노력했다.




으스스한 분위기와 반전 있는 결말이 매력적인 작품인데, 결말을 결정할 때 고민은 없었는지?

나는 어두우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왔던 것 같다. 보는 순간 ‘이게 뭐지’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전형적이지 않다면 성공적인 작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나더는 작품 아이디어 구상 단계에서 영화 겟아웃을 보고 저런 공포영화 같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장르를 선택했었다. 사실 처음부터 결말의 방향은 결정돼 있었다. 다만 이런 결말이 관객들의 이해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 많은 외국 인들이 결말의 반전을 재미있어하더라. 통한 것 같아 무척 기뻤다.


 

어나더의 배경작화가 현대 한국의 모습을 잘 담고 있는 점도 인상적인데

한국적인 배경을 살리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집의 구조라든지, 길을 가다 보이는 한글 간판, 학원, 교회, 뒷산, 달동네 같은 것들을 많이 담았다. 왜냐면 나는 지금 한국의 모습이 무척 세련되고 멋있고, 흔히 ‘힙하다’고 말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번쩍이는 네온 간판들, 밤거리의 화려한 조명들 같은 것들이 외국에서 볼 수 없는 한국만의 모습과 느낌을 자아내고 있지 않나. 그런 부분을 애니메이션에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작업했다.


 

어나더는 대사가 많지 않은 작품이다. 이야기나 감정을 영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캐릭터의 표정에 많이 신경 쓴다. 캐릭터에 최대한 감정을 이입해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고민해보며 가장 리얼한 표정을 연출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과를 전공할 당시 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큰 도움이 됐다.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임은 같으니 연기력도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작품의 효과음도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외주 작업으로 진행했지만 최대한 세심하게 요청 사항과 느낌을 전달하며 공을 들였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지?

애니메이션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가끔 어떤 작업도 하지 않으면 매우 우울해진다. 그림을 그리든, 외주 작업을 하든 아니면 나를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든 어떤 일이든 해서 주기적으로 내 안에 있는 창작 욕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나를 가득 채워주는 것이 애니메이션이다. 어찌 보면 우울감을 해소해주는 엄청나게 힘든 취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또 때로는 만드는 순간순간내 한계를 스스로 테스트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만약 이게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못 만들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그냥 좋으니까 하는 것 같다. 가볍게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일, 좋아서 하는 취미가 내게는 애니메이션인 것 같다.




외주 작업도 많이 하는데, 독립 애니메이션 작업과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렵진 않은지?

지금은 극장판 장편 만화영화 태일이 제작팀에서 잠시 일을 하고 있고, 가끔 들어오는 뮤직비디오 영상 제작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각각의 작업을 각각의 것으로 선을 긋지 않는 편이다. 열정과 수고를 들이는 것도 모두 같다.‘ 모두 내가 만드는 것이니까 모두 같은 것.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계속 작업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내가 만들고 싶은 애니메이션과 방향성이 맞지 않으면 일 자체를 시작하지 않는다. 학생 시절 이규태 감독님께 그림을 배운 적이 있는데, 당시 감독님께서 “자기와 맞는 일을 받는 것이 최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말씀처럼 나와 방향성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 시장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시장의 영역이 좀 더 넓어지면 좋겠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에는 한국에서의 지원사업이 메인이었는데 지금은 외국 자본이 지원해주는 경우도 생긴 덕분에 세계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지원 경로가 늘어나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가 더많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가능성을 충분히 가진 장르이기 때문에 그렇게 발전해나간다면 언젠가는 케이팝이나 영화처럼, 세계를 놀라게 하는 애니메이션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극장판 프로젝트 위주로 제작에 참여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발판이 되어 앞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데뷔하고 싶다. 가장 큰 목표라고 하면 장편 애니메이션 시장을 활짝 열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지금 하는 일들을 충실히 해나갈 것이다. 예를 들어 장편 애니메이션 태일이가 큰 성공을 거둬서 장편 애니메이션 시장의 활성화를 이끈다면, 나 역시 거기에 일조했으니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에 충실하 면서 차근차근 해나가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들 계획은 없다. 하지만 생각은 언제 또 바뀔지 모르니까. 반드시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 른다면 또 망설이지 않고 시작할 것 같기도 하다.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계속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것 하나만 잊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가끔은 다른 길로 셀 수도 있겠지만 천천히, 꾸준히, 목표를 잃지 않고 나아가겠다.


박연 감독

·<고장난 가로등> 2009

· 2011

· 2016

·<잭 위에서> 2017

·<어나더> 2019




출처 : 월간 <아이러브캐릭터> 2020.3월호
<아이러브캐릭터 편집부> (master@ilovecharac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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